snow · 2026.6.29 12:44 · 조회 0

타임 크리스탈 — 시간 속에서 영원히 반복하는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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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가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프랭크 윌첵(Frank Wilczek)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의 연구실에서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결정(crystal)이란 무엇인가? 원자들이 공간 속에서 주기적으로 배열된 구조입니다. 그 배열이 반복되기 때문에, 결정은 공간의 연속 대칭성(continuous symmetry)을 깨고 이산 대칭성(discrete symmetry)만을 남깁니다. 그렇다면,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물질은 어떨까요?

윌첵은 그 가능성을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는 이 새로운 물질의 위상을 "타임 크리스탈(time crystal)", 즉 시간 결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해 발표된 논문은 물리학계에 거대한 논쟁의 폭풍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정이란 무엇인가 — 공간 대칭의 파괴

타임 크리스탈을 이해하려면 먼저 일반 결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소금(NaCl) 결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이 규칙적인 격자(lattice) 구조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이 결정을 1나노미터 옆으로 밀면, 그 구조는 달라 보입니다 — 원자들의 위치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격자 간격만큼 밀면? 완전히 동일하게 보입니다.

이것이 **공간 대칭의 자발적 파괴(spontaneous breaking of spatial symmetry)**입니다. 물리 법칙 자체는 어떤 공간적 위치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됩니다(연속 공간 대칭). 그러나 결정이 형성되면, 물질의 실제 배열이 이 연속 대칭을 깨고 이산적인 반복 구조만을 허용합니다.

윌첵의 아이디어는 명쾌했습니다:

"공간 대칭을 자발적으로 깨는 것이 결정이라면, 시간 대칭을 자발적으로 깨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시간 대칭이란 물리 법칙이 특정 시간적 위치에 무관하게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원리입니다. 타임 크리스탈은 이 대칭을 깨고, 에너지를 주입받지 않은 바닥 상태(ground state)에서도 주기적으로 진동하는 물질입니다.

논쟁의 시작 — 영구 운동인가?

2012년 윌첵의 논문이 발표되자 물리학계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것이 일종의 **영구 운동 기계(perpetual motion machine)**와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바닥 상태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지 않고 운동을 계속한다면, 이는 열역학 제1법칙 — 에너지 보존 — 을 위반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배터리 없이 영원히 돌아가는 시계 같은 것이 아닌가?

2015년, 패트릭 브루노(Patrick Bruno)와 마시모 오시아카(Masimo Oshikawa)는 이론적 분석을 통해 평형 상태(equilibrium state)의 바닥 상태에서는 타임 크리스탈이 존재할 수 없다는 증명을 제시했습니다. 윌첵의 원래 제안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입니다.

물리학계는 타임 크리스탈의 꿈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부활 — 비평형 타임 크리스탈의 등장

그런데 2016년, 상황이 반전됩니다. 버클리 대학교의 노만 이지(Norman Yao)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브루노와 오시아카의 증명은 평형 상태에만 적용됩니다. 만약 시스템이 영원히 평형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이지는 비평형(non-equilibrium) 조건에서 구동되는 타임 크리스탈 — "플로켓 타임 크리스탈(Floquet time crystal)" 또는 "이산 타임 크리스탈(discrete time crystal)"이라고도 불리는 — 의 이론적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핵심 아이디어는 이러합니다:

  1. 시스템에 주기적인 구동(periodic driving)을 가합니다 — 예를 들어 레이저 펄스
  2. 시스템이 그 구동 주기의 정수배 배수로 반응합니다 — 예를 들어 2배 주기로 진동
  3. 이것이 시간 대칭의 자발적 파괴입니다

에너지를 완전히 공급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레이저 펄스가 주기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이 구동과 같은 주기로 반응하지 않고, 구동의 배수 주기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동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니라 물질 자체의 내재적 특성에서 나오는 반응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진동이 **다대일 잠금(many-body localization, MBL)**이라는 현상으로 보호받아 매우 오랫동안 — 이론적으로는 영원히 — 유지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보통 양자 시스템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결깨짐(decoherence)을 겪어 진동이 소멸됩니다. 그러나 다체 국소화 상태에서는 정보가 국소적으로 가두어져 이 붕괴가 극도로 억제됩니다.

2017년 — 실험으로 탄생한 타임 크리스탈

이론이 제시된 지 불과 1년 만에, 두 개의 독립적인 실험팀이 타임 크리스탈을 실제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메릴랜드 대학교 팀 (크리스토퍼 먼로, Christopher Monroe 연구진)

10개의 이테르븀(Ytterbium) 이온을 레이저로 포획한 뒤, 이온들 사이에 강한 상호작용을 유도했습니다. 그리고 주기 T로 레이저 펄스를 가했을 때, 시스템이 2T 주기로 진동하는 것을 관측했습니다.

실험 조건 (메릴랜드 대학교, 2017):
  물질:      이테르븀-171 이온
  이온 수:   10개
  구동 주기: T (레이저 펄스)
  관측 주기: 2T (타임 크리스탈 진동)
  온도:      극저온 (이온 트랩)
  결과:      Nature, 2017년 3월

구글 퀀텀 AI 팀 (서루스 바후치, Siyuan Lu 연구진)

구글은 초전도 큐비트(superconducting qubit) 기반의 양자 컴퓨터 프로세서를 사용했습니다. 20개의 큐비트로 구성된 시스템에서 유사한 주기 배증(period doubling) 현상을 관측했습니다.

실험팀물리적 시스템큐비트 수발표 저널
메릴랜드 대학교이테르븀 이온 트랩10Nature
구글 / UCSB초전도 큐비트20Nature

두 논문은 같은 호에 나란히 발표되었습니다. 타임 크리스탈은 더 이상 이론이 아니었습니다.

타임 크리스탈은 무엇이 특별한가

"그래서 뭐가 특별한가요? 그냥 진자처럼 흔들리는 거 아닌가요?"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타임 크리스탈이 단순한 진동자와 다른 이유는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강건성(Robustness). 일반적인 진동자는 약간의 교란이나 불완전성에 의해 진동 주기가 흐트러집니다. 타임 크리스탈의 진동은 많은 입자들의 양자 얽힘(entanglement)으로 인해 집단적으로 보호됩니다. 구동 주기를 약간 변화시켜도, 시스템은 완고하게 2T 주기를 고집합니다.

둘째, 자발적 대칭 파괴. 구동 주기가 T이면 시스템이 T로 반응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2T로 반응한다는 것은 시스템이 스스로 대칭을 낮춘 것입니다. 이것은 강제된 결과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입니다.

셋째, 에너지가 올라가지 않음. 보통 주기적으로 구동되는 시스템은 에너지를 계속 흡수해 결국 열화됩니다. 다체 국소화 덕분에 타임 크리스탈은 이 열화를 피하고 무한히 — 또는 매우 오랫동안 — 진동을 유지합니다.

물질의 새로운 상 — 위상의 확장

응집 물질 물리학(condensed matter physics)은 전통적으로 물질의 위상(phase)을 고체, 액체, 기체, 그리고 초전도체나 자성체 같은 특이 상태로 분류해 왔습니다.

타임 크리스탈은 이 분류에 새로운 범주를 추가합니다. **시간 차원에서의 질서(temporal order)**를 가진 물질의 위상입니다. 공간적 질서가 결정을 정의하듯, 시간적 질서가 타임 크리스탈을 정의합니다.

물질의 위상 분류 (타임 크리스탈 포함):

일반 결정:  공간 속 주기적 배열      → 공간 대칭 파괴
타임 크리스탈: 시간 속 주기적 진동  → 시간 대칭 파괴
시공간 결정: 공간 + 시간 모두 질서  → 시공간 대칭 파괴 (이론적 제안)

2021년 구글의 양자 컴퓨터 팀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더 복잡한 타임 크리스탈 상태를 시뮬레이션했습니다. 이번에는 위상 변이(phase transition)도 관측되었으며, 타임 크리스탈이 단순한 실험적 호기심을 넘어 양자 위상 물질(quantum phase of matter)의 진지한 연구 대상임이 확인되었습니다.

타임 크리스탈과 시간여행의 관계

타임 크리스탈이 직접적으로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시간과 에너지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심오한 의미를 가집니다.

노에터 정리(Noether's theorem)에 따르면, 시간 변환 대칭(time translation symmetry)이 에너지 보존 법칙으로 이어집니다. 타임 크리스탈에서 이 대칭이 자발적으로 파괴된다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의 관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타임 크리스탈은 양자 컴퓨터의 미래에도 깊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결깨짐으로부터 보호된 양자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양자 컴퓨팅의 핵심 과제인데, 타임 크리스탈의 강건성이 바로 이 문제에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아직 남은 질문들

2020년대에도 타임 크리스탈 연구는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미해결 문제들도 많습니다.

  • 진정한 열역학적 한계에서의 타임 크리스탈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현재 실험들은 단지 긴 수명의 진동자에 불과한가?
  • 타임 크리스탈의 진동이 실제로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가?
  • 더 복잡한 시공간 질서를 가진 물질이 존재할 수 있는가?

프랭크 윌첵이 2012년에 제안한 이 개념은 처음에는 환상처럼 보였습니다. 평형 상태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지자 사망 선고를 받은 듯했습니다. 그러나 비평형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부활하여, 2017년 두 개의 독립적인 실험에 의해 실재하는 물질로 증명되었습니다.

시간 속에서 영원히 반복하는 물질 — 그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허락한 가장 기묘한 선물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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